인라인스케이트, 롤러스케이트, 테니스, 댄스, 색소폰 연주, 자전거, 전동 바이크, 킥보드, 배드민턴, 롱보드, 애완견, 캐치볼, 축구. 양재천에서 이 모든 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는 딱 한 군데다. 아침 출근길 걸으며 세 번째 만나는 다리가 영동 1교다. 요즘은 이 주변 양재천 우안 도로 공사로 어수선해 걷기에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산책로까지 침범한 대형 트럭과 교각 공사의 여파는 먼지구름을 흩날려 입과 코를 막고 걸어가게 한다. 그렇게 영동 1교 밑에 다다르면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안쪽 바닥은 붉은색으로 칠하고 둘레는 녹색으로 칠한 꽤 넓은 공간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다리 밑이라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둑하지만, 한여름 이곳은 더위를 피하는 곳으로 제격이다. 땡볕에 땀 흘리며 걷는 사람에게 휴식의 공간이 되어주기도 하고 아이에게는 킥보드를 타고 씽씽 소리를 내며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운동장으로서도 훌륭하다. 어디 그뿐일까. 아침에 이곳을 지나가다 우연히 멋진 색소폰 연주 소리에 놀라기도 한다. 다리 뒤에 숨어 수줍게 색소폰을 부는 아저씨. 그 색소폰에서 퍼진 소리는 다리와 바닥이 울림판이 되어 콘서트홀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영화 '셸 위 댄스'를 떠올리게 하는 어느 중년 아저씨의 나 홀로 댄스 삼매경. 같은 시간에 색소폰 아저씨와 이 공간에 있었더라면 한 편의 훌륭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정말 '셸 위 댄스'처럼.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양재천에서 이만큼 다양한 볼거리와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장소는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공간. 운동에 지쳐 물 한 모금 마시며 쉬는 러닝족, 애완견과 산책 나온 사람, 그 옆에서 애완견이 이쁘다고 강아지와 장난치는 아이, 고등학생 남자아이들의 자전거 부대, 인라인스케이트로 녹색 바닥을 도는 아저씨, 한편에서 배드민턴을 즐기는 엄마와 딸. 전부 가지각색으로 이 공간에서 몸을 움직인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건강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불량한 사람들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콘서트홀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댄스홀이 되며 앉아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데이트 장소. 우리 가족에게는 제1의 목적지이기도 하다. 걷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겨우겨우 걸어서 올 수 있는 장소. 걸으면서 느낀다. 처음부터 멀리 많이 걷는 건 불가능하다. 그냥 조금씩이라도 내가 걸을 수 있는 목표를 정하는 것. 특히 아이들과 함께 걷는다면 더더욱.
'저곳에 가면 쉴 수 있어. 조금만 더 가면 안전하게 킥보드도 탈 수 있고, 애완견도 만날 수 있어.'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아이들을 설득시키며 제1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
오아시스 같은 영동 1교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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