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2018년 3월 14일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그의 첫 마디였다. 그리고 하루 뒤, 천명관의 단편 소설 [퇴근]을 읽게 됐다. 이 짧지만, 너무도 강렬하고 암울한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작가의 창작 노트를 읽었다. 서두에 MB의 포토라인 기자회견을 인용한 이유는 잡혀가는 그에 대해서 한 마디, 정말 한마디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 책의 저자 천명관이 [퇴근]을 쓰게 된 동기가 MB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권력을 손에 넣었을 때부터 나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 많은 근심과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나 또한 그때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MB는 참 대단한 인물이다. 예술가들의 영감을 불러일으켜 이런 멋진 작품을 읽게 해주니 말이다.
이 소설을 읽다가 이건 지금부터 얼마나 떨어진 미래의 이야기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실업률이 구십 퍼센트를 넘은 나라. 이 구십 퍼센트가 넘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담요'라고 불린다. 국가운영부에서 지급하는 바우처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무 데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아무 소득도 없으며 태반은 일정한 거주지도 없는 노숙자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한국어'다. 당연히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어를 사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언어 선택에서도 계급이 나누어진다. 슈퍼리치가 지배하는 극소수의 계층이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라는 설정. 이 사회는 '회사원'과 '담요' 그리고 '슈퍼리치' 딱 세 가지 종(種)의 인간으로 나뉜다. 담요들의 생활은 나날이 악화한다. 실업자는 한계치를 넘어서 끝내 시위와 폭동으로 이어지고 많은 최하층인 담요들만 목숨을 잃는다. 점점 실업자가 늘어나고 회사원도 담요의 신분으로 추락한다. 한번 떨어진 신분은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정말 암울한 사회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과연 이게 미래의 일일까? 솔직한 심정은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현재 우리들의 사회라는 것에 강한 부정을 하지는 못하겠다. 조금은 과장된 이야기지만 어느 부분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 특히 더 암울하게 한 것은 '슈퍼리치'가 국가를 조정하고 있다는 설정은 너무나도 지금의 현실과 똑같아 가슴이 아리다. 정부의 모든 업무가 '슈퍼리치'의 작은 부서에서 운영된다는 설정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재벌의 유전무죄와 다를 바 없다. 돈이 없어서 병든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입양 보내야 하는 아빠. 거짓 같은 이런 현실을 마주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에게는 단지 오늘 하루뿐인 참담한 심정이었을지도 모를, 그러나 우리 같은 시민들은 오랜 시간 참담한 심정으로 참고 살아왔다. 우연히 읽게 된 천명관의 [퇴근]은 정치에 무관심해지면 우리도 언젠가는 '담요'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끝으로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의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건 자랑이 아니라 권리 위에 잠자는 어리석은 자임을 자백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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