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면 눈에 담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몸이 먼저 반사작용을 일으켜 시선이 돌아간다. 그것은 바로 봄의 꽃과 나무 때문이다. 걷다가 유난히 힘든 날이 있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에서 이상한 신호를 내보낸다. 무겁다. 무언가 어제와 다르다. 더 힘들게 느껴지는 날. 길가에 화사하게 핀 이름 모를 꽃이 나의 속도를 점점 늦춘다. 내가 본격적으로 걷기라는 운동을 시작하기 전, 길바닥의 꽃은 그냥 꽃이었다. 다시 말해 눈길 한 번 주고 지나치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들의 존재에 질문하지 않았다. 가수 양희은이 후배를 만나면 꼭 하던 말. "네 이름은 뭐니?" 나는 그렇게 묻지 않았다. 내게는 이름 모를 꽃에 불과했다. 부지불식간에 휙 하고 지나가 버린 시간. 꽃 이상의 아무 존재도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걷다 보니 나의 행동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회사에 늦지 않기 위해 정해진 속도와 템포로 두 시간 남짓 걸어간다. 그러다 보면 이쁜 꽃을 보고서도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뭔가 께름칙한 찝찝함이 밀려온다.
'아! 저 꽃은 뭐였을까? 이름이 뭘까?'
내 뒤로 멀어져 가는 꽃을 그리며 못내 아쉬운 감정이 찌꺼기처럼 남는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왜 이쁜 꽃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쳤을까. 해답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잠깐의 멈춤' 긴 시간도 아니다. 길어야 20여 초의 짧은 시간만 투자하면 발전된 핸드폰의 기술로 꽃의 정체를 알 수 있는데도. 이 세상에 내가 알지 못했던 존재를 하나씩이라도 지워나갈 기회를 마다하면서. 급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둘러대기 바빴다.
살아가면서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이 급박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뒤로 돌아볼 겨를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앞을 바라보고 걷는 것도 아닌 삶. 내가 지나갔던 자리에 무엇이 남았을까. 창피하지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무언가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도 모르는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아도 불편함이 없었으므로. 아니 불편함을 알면서도 묵인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내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보다 절박하지 않아서, 남보다 열정이 없어서, 남보다 똑똑하지 못해서. 이 모두가 나의 문제가 아닌 타인이 잘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수없이 지나친 이름 모를 사물들.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을뿐더러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라도 한 번 멈춰 서서 돌아볼 여유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남들보다 많이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까지 모른 채로 걸어온 길을 더듬어 봤더라면.
지금 내가 걷는 양재천 길. 이 길 위에 있는 모든 사물을 헤아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알면서 걷는 것과 모른 채로 걷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됐다. 알면서 얻어지는 행복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내가 알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급하고 바쁘더라도 한 번쯤 돌아볼 여유. 어차피 내 앞에 걸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양재천 길. 상대방이 보이지 않기에 더욱더 조급하지도 서두를 필요 없이. 이 길에서 나는 꽃과 나무의 이름을 얻었다. 지금까지 모르고 지나쳤던 이쁘고 화사하게 활짝 핀 꽃과 나무. 지치고 힘든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봄의 꽃. 새로운 단어를 줍는 길. 양재천에서 여미한 단어를 주었다.
내일 너를 다시 만난다면 너의 이름을 꼭 불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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