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예보를 보니 내일은 걷지를 못하겠군.'
마스크를 준비하라는 기상 캐스터의 목소리. 오늘은 걷고 싶은 기운 만땅인데 요놈에 미세먼지 덕에 바퀴 위에 내 몸을 싣기로 했다. 그런 연유로 오늘 아침은 조금 늦게 나가도 된다. 딸은 학교, 나는 버스 정류장.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 걷고 있는데 딸의 손이 살포시 내 손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초등학생인 딸은 내 손 안으로 자기 손을 넣는 것을 좋아한다. 언제까지 그럴지는 모르지만 나도 그게 싫지는 않다. 딸의 손이 들어오는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딸의 보드라운 살갗이 아니었다. 원래 딸의 손을 잡을 때는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제일 큰 감촉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한 학년 올라간 게 이리도 차이가 있을까. 손바닥 안에서 느껴지는 묵직함. 내 손이 딸의 손을 전부 감쌀 수 없을 만큼 자란 것이다.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망졸망했던 조약돌 같았던 손은 어느새 쑥 자라 있었다.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은 여러 방향에서 들어오고 느껴진다. 외형의 변화에서 눈으로 들어오고 말하는 본새에서 귀로 들어오고 아내의 입을 통해 내 귀로 들어오기도 한다. 아 맞다! 코로도 들어온다. 딸이 바르는 매니큐어나 보습크림의 향기. 아니 나에겐 그저 냄새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악취. 싸구려 매니큐어의 코끝을 찡하게 하는 시큼한 냄새 때문이다. 나의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서 딸내미가 이만큼 자랐다고 신호가 들어온다. 오늘 아침에는 촉감으로도 스며들었다. '벌써 이만큼 성장했구나.'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렇게 자랐을까.
좋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다른 감정이 밀려든다.
앞으로 더 자랄 건데....
그때는 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나는 아이들을 잘 키워낼지...
내 머릿속은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복잡한 내 마음과 달리 딸내미는 그러면서도 천진난만하게 말한다.
"아빠 내 틱톡에 팔로가 댓글 달았는데 나보고 아주 잘한데. 낄낄낄."
자기와 관계도 없는 모르는 사람의 댓글이 그리도 좋은지. 연신 낄낄거린다. 최근에 시작한 틱톡에 흠뻑 빠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딸내미가 언제까지 자기 손을 내 손 안으로 밀어 넣을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그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 아빠의 손보다 다른 남자의 손이 더 좋아질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왕좌의 게임'의 유명한 대사를 빌리자면 "Winter is Coming"이 아니라 아마도 "Boyfriend is Coming"이 아닐는지.
2019/04/18 - [일상/하루하루] - 걷는 아저씨 첫째 날 18,610보
2019/04/22 - [일상/하루하루] - 걷는 아저씨, 2일 째 18,879보
2019/04/24 - [일상/하루하루] - 걷는 아저씨, 3일
2019/04/25 - [일상/하루하루] - 걷는 아저씨, 4일
2019/04/29 - [일상/하루하루] - 걷는 아저씨, 5일 째
|
|
걷는 아저씨, 8일 (0) | 2019.05.03 |
---|---|
걷는 아저씨, 7일 (0) | 2019.05.02 |
걷는 아저씨, 5일 째 (0) | 2019.04.29 |
걷는 아저씨, 4일 (0) | 2019.04.25 |
걷는 아저씨, 3일 (0) | 2019.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