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커피 한 잔과 비스킷
케냐AA
식은 커피가 왜 이렇게 맛있어!
드립 커피를 마시고 나서 커피의 또 다른 얼굴이 보였다. 집에서 원두커피를 먹기 시작한 지 이제 여섯 달이 조금 지났다. 인스턴트 커피믹스와 드립 커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뜨거울 때가 아니라 먹다가 남긴 하루 지난 커피를 마셨을 때다. 커피는 무조건 뜨거울 때 마셔야 제맛이라는 선입견은 이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일회용 커피믹스가 아니라 드립 커피여야 한다는 조건이다.
요즘 주로 마시는 원두 품종은 케냐 AA. 커피 전시회에서 우연히 한 봉지 사 온 커피다. 원두 네 스푼을 그라인더에 갈면 머그잔으로 딱 석 잔이 나온다. 두 잔은 진한 커피, 나머지 한 잔은 내일 먹을 흐린 커피가 나온다. 일부러 석 잔을 뽑는 건 아니고 원두가 아까워 그냥 연하게 한 잔 더 내리다 보니 석 잔이 됐다. 두 잔은 아내와 바로 마시고 한 잔은 다음 날 마시던가 한다. 참! 신기하게도 뜨거웠을 때 마시는 커피와 식은 커피를 마실 때, 그 차이가 극명하다. 내가 먹는 케냐 AA를 예로 든다면 뜨거울 때는 신맛이 조금 덜하고 진하고 탄 맛이 느껴진다. 반대로 식은 커피를 마셨을 때는 단맛의 풍미가 더 올라오고 신맛의 증가하고 다크 초콜릿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먹다 남은 일회용 커피믹스를 마셨을 때는 우웩! 우웩! 뱉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서 그렇지 않다고 느낄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 입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이 식은 원두커피의 맛을 한 걸음 더 나아가 깜짝 놀랄 맛을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비스킷'과 함께 먹었을 때다. 참 크래커나 에이스 크래커 한쪽을 먹고 식은 원두커피를 마셔보라! 정말 깜짝 놀랄만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절대 뜨거운 커피가 아니라 식은 커피여야 한다는 것.
식은 커피
원두커피의 두 얼굴
드립 커피에 발을 들이면서 커피의 새로운 얼굴을 봤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뜨거운 얼굴만 봤던 커피에 또 다른 얼굴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런 면에서 닮은 듯하다. 그 사람을 제대로 잘 알지 못했을 때, 선입견은 그 사람을 인지하는 일방적인 수단이 된다. 따라서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진짜 맛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이 경험한 사실로만 판단하게 된다. 뜨거운 커피와 식은 커피가 전혀 다른 맛을 내듯이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사람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서 알게 됐을 때, 그 사람의 전혀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인간관계도 서로가 한 걸음 다가가야 비로소 제맛을 찾아낼 수 있다.
식은 원두커피를 만났을 때 생각지도 않은 즐거움을 얻게 된다. 꼭 한 번쯤은 식은 커피를 맛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