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가까이 하지 말도록.
글을 쓰는 작가가 책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다음처럼 이어진다.
책은 인류의 지혜로 가득하지만 그와 함께 독도 포함되어 있다. 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그 독에 영혼을 빨리고 있는 것이다. 책을 가까이 하지 말도록. 가까이 하다보면 입맛을 다시며 꿀꺽하고 싶은 것이 잔뜩 보이니까. 가까이 하지 말라니까. 읽고 싶겠지만.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으면 책 속으로 영혼이 빨린다는 말을 하겠는가. 세계 2차 대전 패망을 겪은 작가의 어린 시절 유일한 놀거리는 독서뿐이었다고 한다. "책을 가까이 하다보면 입맛을 다시며 꿀꺽하고 싶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텔레비전 맛집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셰프의 손에서 음식이 맛깔나게 조리되면서 들리는 소리에 입맛을 다시거나 침을 흘린다. 즉 음식을 앞에 두고 입맛을 다시지 책을 앞에 두고 그런 표현은 하지 않는다. 책을 보면 입맛이 다셔지고 침이 뚝뚝 떨어질 정도라면 이 작가가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감히 사노 요코처럼 영혼이 빨릴 레벨까지 독서를 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주 가끔 아주 가끔은 서점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입맛까지 다시지는 않지만 매대에 쌓인 책과 출판된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책 표지를 볼 때면 그저 기분이 좋다. 굳이 책을 들어 읽지 않아도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잠시 잠깐 영혼이 가출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무식한 내 머릿속을 채워줄 글자들을 보면 그곳에 있다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책이라는 것이 읽는다고 금세 똑똑해지거나 현명해지지 않는다. 다만 책을 통해서만이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반성할 것이 있으면 반성하게 되고, 잘한 것이 있으면 스스로 칭찬하기도 한다. 내가 잊고 지냈던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내는, 환생술을 부리는 마술사 같다고 해야 할까. 정말 잊힌 기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문득문득 튀어나올 때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다. 아직까지 영혼이 빨려보지는 않아서 사노 요코처럼 책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할 자신은 없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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