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출근 버스 안에서 정말 무례한 사람을 보았다. 아침부터 굵직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우산을 써도 머리만 젖지 않을 뿐 몸의 다른 부위들은 이미 흥건히 젖어 바짓단에 조금씩 무게감이 더해진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엔 버스 입구에서 잽싸게 우산을 접고 들어간다 해도 그 짧은 시간에 머리와 셔츠가 금세 젖을 정도가 된다. 비 오는 날 버스 안의 풍경은 우산을 미리 접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버스에 타기 전에 미리 접어서 들어온 사람은 조금은 더 여유롭다. 그러나 우산을 미처 접지 못한 사람들은 얘기가 다르다. 기사 아저씨가 급출발이라도 하는 날엔 비좁은 공간에서 우산이 저절로 펼쳐지는 일도 벌어진다. 이럴 땐, 참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승객들에게 빗물이 튀는 걸 막을 길이 없다. 나는 이런 상황이 닥치는 걸 싫어해서 비를 흠뻑 맞더라도 미리 우산 끈을 돌돌돌 말아서 완벽하게 잠가놓고 탑승한다. 바쁜 출근 시간에 버스에 올라타서 허겁지겁 우산을 정리하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일기 때문에 내가 조금 손해를 입더라도 느긋한 쪽을 선택한다.
오늘도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다음 정류장에서 많은 사람이 승차했다. 역시나 그들의 우산에서 뚝뚝뚝 물이 흘러 버스 바닥은 구정물로 곳곳이 지저분해졌다. 가운데 머리가 시원하게 벗어진 아저씨가 양쪽 좌석 사이 통로에 썼다. 동작이 허둥지둥하고 부산하다. 어이없게도 우산을 편 채로 버스에 탑승해버렸다. 3단 접이식 우산을 접는다는 것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향해 우산을 탈탈탈 털고만 있다.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바닥으로 향하게 해서 우산을 접는 것이 예의이거늘. 시종일관 통로에 서서 양쪽 편에 앉은 사람들에게 빗물이 튀든 말든 개의치 않고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쯤 되면 당연히 뭐라 불만의 말이 나올 만도 한데, 한국 사람들은 정말로 착한 사람들일까. 지금 상황이 정말 어이없고 싫은 상황인데도 심하게 짜증을 내지 않고 그냥 "어머, 어머, 어머"라고. 무례한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괜스레 싸움이 날까 걱정돼 참고만 있다. 이 무례한 아저씨는 옆에 빈자리가 있어 앉았다. 여전히 우산을 펼친 채로. 옆 사람에겐 당연히 빗물이 뚝뚝. 살짝 짜증을 내보이지만 거세게 항의는 하지 않는다. 그냥 나이 든 어르신이니 그러려니 생각하는 듯하다. 무례한 아저씨의 우산은 아직도 접히지 않았다. 이번엔 앞에 앉은 아저씨를 향해 우산을 한 번 탁 턴다. 아마도 우산을 접으려고 한 행동인데, 결과는 고스란히 앞에 앉은 아저씨의 머리로 빗물이 날아갔다. 아! 좋은 사람들. 이 버스에는 착한 사람들만 타고 있나 보다.
이렇게 무례한 아저씨에게 "아저씨! 우산을 바닥으로 향하게 해서 접어야죠. 사람들에게 이렇게 피해를 주시면 어떡합니까?"라고 무례함을 꾸짖는 사람들은 없었다. 혹시 이 책의 저자가 그 버스 안에 있었다면 그 상황에서 뭐라고 따끔한 한마디가 가능했을까? 나의 공간을 문득문득 침범해서 피해를 주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뭐라도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의 말이라도 하려면 평상시에 훈련돼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나고 나서 "아! 그때 그렇게 말했어야 했는데."라고 자주 후회를 하곤 한다. 살면서 무례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다. 내가 아직 준비도 못 했는데 훅 들어올 수도 있고, 준비는 되어 있는데 그런 사람을 다행히 만나지 못해 준비한 말을 써먹을 수가 없을 때도 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 혹은 나의 자존감을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하는 존재들은 반드시 있다. 이들에게 맞서 대응하려면 일상생활에서 훈련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무례한 사람에게 맞서는 방법은 상대방에게 말을 함으로써 결실을 볼 수 있다. 말에 서툰 사람들은 애써 꺼낸 한 마디가 자칫하면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한다. 따라서 평소에 조금 더 유연하게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막상 무례함을 상대하는 이성이 주도하는 말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논리적으로 정돈되지 않은 감정에 울컥한 두서없는 말이 나와버린다. 누근들 무례한 사람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은 당하고만 있지 말라고 여러 사례를 들어 말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자존감이 무너지면 자기 자신만 상처 입고 힘들기 때문이다. 참지 말고 할 말은 하면서 살아가라고. 참는 게 미덕이라는 말은 옛말. 출근 버스 안에서 무례한 아저씨의 우산에서 흩날리는 빗물을 받아낸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처럼 나의 공간을 문득문득 침범하는 사람들은 대개 나를 모르고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다.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나의 깊은 감정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는 사람이다. 그런 이들에게까지 나의 공간을 열어 보일 필요는 없다. 또 사람마다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감각이 달라서,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훅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관계를 이어가려면 나름의 대처법이 필요하다.
"마음이 몸을 바꾸듯 몸이 마음을 바꿀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가 연구한 대표적인 불안 증상 중 하나로 '가면 현상'이 있다. 자신의 진짜 능력은 보잘 것없다고 믿으며 이 사실이 남에게 알려질까봐 두려워하는 것을 뜻한다. - 에이미 커디 [프레즌스]
상처 덜 받고 자존감 높게 살고 싶지만, 그게 가능했던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비슷한 고민들을 하는 듯하다.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자꾸 참으면 내가 무기력해진다. 무례한 사람들을 만난다면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나만의 대처법을 갖춰야 한다.
나이가 들면 그동안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마음속에 사람의 유형을 혈액형 나누듯 감정적으로 구분하고, 내 스타일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자꾸 나누게 된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본능 같기도 한데, 이처럼 사람을 빠르게 판단해 편을 가르는 것이 습관이 되면 만나는 사람의 영역이 더는 확장되지 않고 멈춰버린다. 주변에 생각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만 두면 사람은 급속도로 '꼰대'가 되고 만다.
사람들에게 휘둘린다는 느낌이 들 때, 사람들을 만나지만 자꾸 헛헛해질 때 인간관계에 관한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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