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걷기는 시작됐다. 오늘 코스는 집에서 양재천 길을 따라 타워팰리스까지. 돌아오는 길은 타워팰리스 고층 빌딩 숲을 지나 버스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선택했다. 총 거리 12.8km. 오늘은 월차를 내고 회사를 하루 쉬었기 때문에 왕복 코스 걷기가 됐다. 출근하는 주중엔 편도 걷기, 주말은 왕복 코스로 이루어진다. 걷기 지루함을 달래는 나만의 루틴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뭐, 꼭 루틴까지는 아니어도 매일 같은 길만 걸으면 재미없어 되도록 다른 길을 걸으려고 시도한다. 좋은 것도 계속하거나 맛있다고 똑같은 음식만 먹으면 금방 질리는 것처럼. 나는 여러 길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 나오기도 한다. 걷는 목적이 살을 빼거나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기 위함이라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즐기지 못하면 힘만 들고 따분하므로. 따라서 금세 질리지 않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새로운 길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걷는 길에 약간씩이라도 변화를 주며 걸으면 조금 덜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꾸준함이 모자란 내게 어울리는 루틴을 만들기 위함이다. 최소한 혼자 걷기에서 지루함을 걷어내고자 하는 투지라고 할까. 대부분 사람이 매번 걸었던 길을 걷거나 뛰거나 할 것이다.
그게 순리이기 때문에.
그게 익숙해서.
나 또한 그렇다. 순리에서 벗어나고 역행하는 것, 그 앞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레 겁먹는다. 익숙함을 털어내고 낯선 것을 선택하는 것, 이것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 두렵다. 해보지 않았고 가보지 않은 길이라서. 습관에서 벗어난 행동을 선택하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행동조차 내 무의식은 내가 밟았던 길바닥을 다시 밟아 돌아오게 하듯이. 그만큼 내 몸에 밴 습관은 무섭다. 내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아서 몸을 움직이게 하고 나의 의식과 생각을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꽁꽁 묶어놓는다.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양재천을 걷다 보면 유독 물살이 느린 구간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는 여지없이 하얀 거품이 일고 물 색깔도 탁하다. 한참을 들여다봐도 물이 아래로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역한 오물 냄새까지 코를 찌르는데. 하천도 물이 흐르지 않으면 탁해지듯이 생각이 굳으니 저절로 몸도 따라간다. 살다 보니 따분한 일상은 끊어지지 않는 쇠밧줄처럼 견고하다. 어느 순간 변화 없는 생활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다른 게 필요해. 뭔가 새로운 것 말이야!' 이 지겨운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걷는다. 걷다 보면 지루할 때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의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야 하고. 추운 날은 옷깃을 여미어야 한다. 걷기가 지루할 때는 잠시 멈추고 길가에 핀 꽃에 관심을 기울인다. 양재천 돌다리를 건너보기도 하고. 쉬고 있는 하얀 오리들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찰칵! 그 순간 그 공간에 있던 화사하게 핀 꽃과 오리들을 내 핸드폰에 오려 넣는다. 모르던 꽃의 이름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 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가는 즐거움. 밀려들던 지루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다리에 힘이 솟는다. 다리는 다시 리듬을 타고 앞으로 나아간다. 심심한 국물에는 아주 약간의 조미료만으로 감칠맛을 낼 수 있다. 무료했던 삶에도 아주 조금 '걷기'라는 조미료를 뿌렸더니 그 속에서 다양한 맛이 울어 나는 걸 느낀다. 지금 삶이 지겹다면, 먼저 행동하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이든 좋다.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 움직여라. 그리하여 나는 양재천을 걷는다. 내 삶이 제자리걸음 하지 않게. 더불어 고여있는 내 뱃살도 함께 사라진다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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