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노랑은 단죽화
양재천 산책로를 걷다 보면 문득문득 그 컬러에 마음을 사로잡힌다. 내가 일상에서 흔히 보던 색깔인데 이곳에서 보면 무언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데, 특히 단죽화의 노랑은 정말 포근하고 아름다운 기를 발산한다. 개나리의 노랑과는 다른 진한 황금색 노랑이다. 한 송이에 작은 꽃잎들이 풍성하게 돋아나 녹색 위에서 황금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느낌이다. 개나리와 애기똥풀이 연한 노랑이라면 단죽화는 거기에 주황을 섞어서 아주 진하게 만든 황금 노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꽃은 한 송이씩 드문드문 피지 않고 군집을 이뤄 더 한층 아름다움을 뽐낸다. 오렌지 하나를 반으로 잘라서 두 손으로 꽉 짜면 노랑 즙이 뚝뚝 떨어지는데 단죽화 잎을 뜯어서 두 손으로 비비면 맛있는 노랑 즙이 나올 것만 같다.
오늘은 얇은 점퍼마저 집에 벗어던지고 나왔다. 아직은 심한 일교차로 요 며칠 점퍼를 입고 나섰지만 얼마 못가 점퍼는 내 손에 들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아침은 살짝 쌀쌀한 기운. 걷다 보면 점퍼를 이내 짐꾸러미로 만드는 장난꾸러기 같은 봄날. 아침부터 동쪽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 열을 낸다. 뜨거운 햇살이 이마로 쏟아지고 머리카락도 뜨끈뜨끈. 그늘을 찾아서 양재천 돌다리를 건너 왼편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이맘때 따가운 햇볕을 피하려면 양재천 오른쪽 길이 답이다. 특히 아침에는 그쪽 편에 있는 나무들이 햇볕의 방패막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날이 선선할 때는 굳이 그늘을 찾을 이유가 없었으므로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내가 걷기 편한 곳을 선택하면 됐다. 주로 걷는 방향에서 양재천 왼쪽 길을 선택했다. 이제 5월이 시작되니 태양의 기운도 나날이 세져간다. 반소매 차림의 사람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고 것 옷을 벗어서 들고 걷는 아저씨도 보인다. 변덕쟁이 5월이 시작됐다.
양재천은 참 걷기 좋은 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걷기 좋은 장소를 소개하자면 두 군데로 추려진다. 첫 번째 길은 일명 뚝방길을 따라 걷는 타워팰리스 바로 아래 길이다. 구간이 길지 않아 편하게 걸을 수 있고 봄이면 꽃구경 나오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제격이다. 그리고 정말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길. 내가 걸어가는 양재천은 탄천으로 이어지는 구간까지 열 개의 다리가 있다. 우면교, 양재천교, 영동 1교에서 6교, 대치교, 2교와 3교 사이에 밀미리 다리까지. 여기에 지금은 사라진 무지개다리까지 하면 총 열한 개. 이 중 최고의 산책로 코스는 바로 영동 1교에서 6교까지, 탄천이 시작되는 곳으로 이어지는 오른쪽 산책로다. 자전거 도로보다 한 단계 위쪽에 있는 이 길의 매력은 다음과 같다. 적당히 길다. 시원하다. 눈이 호강한다. 자전거가 없어 안전하다. 양재천 길이 모두 걷기 좋지만 휙휙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자전거에 몸이 움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볕이 좋은 날은 뒤에서 오는 자전거와 맞은편에서 오는 자전거 부대가 씽씽 거리며 밟는 페달에 발걸음이 멈춰 서곤 한다. 걸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은 싹 가시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 때문인지 양재천에는 자전거 길 외에 하나의 산책로를 더 마련했다. 자전거 트랙보다 위쪽에 있는 걷는 사람들의 공간. 그런데 이 공간은 아쉽게도 그리 길지 않다는 것. 그래도 짧은 도곡동 타워팰리스 방향으로 이어지는 구간과 달리 반대편의 구간은 적당히 길어 아주 좋다. 대략 5km 정도는 길이 이어지므로 이곳은 그야말로 최고다.
히아신스의 전설을 아시나요?
그리스 태양의 신 아폴로가 사랑하고 아끼던 소년, 히아킨토스. 아폴로는 어디를 가든 항상 히아킨토스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모든 일을 뒤로한 채 히아킨토스만 감싼 아폴로. 어느 날, 히아킨토스와 원반 던지기 놀이를 했습니다. 그 원반을 잡으려고 달려가던 히아킨토스는 불의의 일격을 당합니다. 둘의 사이를 질투한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바람을 일으켜 원반은 히아킨토스의 머리에 맞았습니다. 히아킨토스의 머리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았고 아폴로는 살려보려고 했지만 결국 히아킨토스는 죽고 말았습니다. 히아킨토스가 피를 흘리며 죽은 자리에서 꽃이 하나 피어올랐습니다. 바로 그 꽃이 붉은 히아신스였다는.
'당신의 사랑이 나의 마음에 머뭅니다'라는 붉은 히아신스의 꽃말. 히아신스는 흰색, 파란색, 빨강으로 전부 사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색깔에 따라서 조금씩 의미는 차이가 있지만 크게는 사랑이다. 아폴로가 히아킨토스에게 보여준 사랑. 하지만 나는 왠지 사랑보다는 질투가 느껴진다. 히아킨토스의 죽음은 결국 질투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아폴로가 편애하지 않았더라면. 이 꽃은 빨갛기보다는 자줏빛에 더 가깝다. 질투가 날 만큼 아름답고 강렬한 색. 당신의 사랑이 나의 마음에 머무는 것처럼 내 핸드폰에도 머물러 주기를 바라며. 한 장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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