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콜록. 에취! 에취!
공휴일이라고 어디 가만히 있으랴! 오늘은 대체 공휴일. 어린이날이 일요일이었던 덕분에 고맙게도 월요병이 도지는 날, 달력에는 반가운 빨간색이 칠해졌다. 보통은 이런 날 다른 집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만의 장소를 찾아간다. 아이를 위해서 좋은 걸 보여주고 많은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 분주하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사람 많은 곳이 싫다. 분명히 도로도 꽉 막힐 것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 말아야 할 사유가 넘친다. 대신에 나는 가족들에게 오만가지 감언이설로 걸으러 나가자고 꼬셨다. 지금 양재천에 나가면 바람도 시원하고 이쁜 꽃도 많이 볼 수 있다고. 덤으로 오리도 구경할 수 있다고. 양재천의 온갖 좋은 것은 다 갖다 붙이며 애원하듯 밖으로 나가자고 말했다. 좀처럼 걷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햇볕까지 쨍쨍한 날에는. 나의 끈질긴 설득과 애원으로 겨우겨우 양재천 산책의 허락을 받아냈다. 나만 혼자 들뜬 마음에 원두를 갈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랭병에 담고 똑같은 보랭병에는 차가운 얼음물을 담았다. 아빠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는 아이들. 가기 싫은 표정은 얼굴에 역력하고 집에서 놀겠다는 의지만 불타오른다. 바깥으로 한 번 나오기 정말 힘들다. 걸으면 정말 좋은데. 나만 좋아하는 걸 가족 모두에게 강요하듯 억지로 문밖으로 나왔다.
양재천으로 내려가 걷기 시작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나. 가뜩이나 걷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장애물은 바로 출현했다. 꽃가루. 꽃가루가 엄청나게 날아다닌다. 다행히 세 명은 괜찮은데 한 명이 난리다.
콜록콜록. 에취! 에취!
딸내미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기침이 잦아지고 콧물이 계속 흐르더니 입과 코 주변이 붉어진다. 차가운 물을 마셔보지만 소용없다. 기침은 가라앉지 않고 눈까지 따갑다고 칭얼댄다. 양재천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얘기해주려고 했건만. 1km나 걸었을까. 아마 그보다도 짧았을 것이다. 양재천을 살짝 맛만 보고 나온 격이다. 조금 더 걸어가면 양재천의 진미를 느낄 수 있을 터인데. 괜한 고집을 부려 죄인이 된 것 같다. 내 속마음을 알았던지 와이프는 나 혼자 갔다 오라며 자신은 아이들과 돌아가겠다고 했다. 고맙지만 왠지 염치없어 그럴 수 없다. 결국, 아쉬운 마음을 접고 모두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미안한 마음에 점심은 맛있는 걸 먹기로 하면서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양재천을 살짝 맛만 보고 돌아와 아이들은 잠시 휴식을 취했고 나는 재빨리 검색해 적당한 식당을 찾았다. 편식이 심한 딸내미를 위해 우리는 식당도 신중히 골라야 한다. 딸내미가 먹는 음식을 파는 식당을 고르는 일은 꾀나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맛도 있어야 하니 말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돈가스와 카레 그리고 함박스테이크, 크림 스파게티를 파는 식당. 딱 우리 가족이 찾는 식당. 이 메뉴 중 딸내미에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건 크림 스파게티다.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메뉴를 만들고 있어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공휴일이라서 혹시라도 쉬는 날은 아닐까.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앗! 그런데 빨리 와야 한다고 했다. 재료가 떨어지면 끝이라고 지금 방문하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고 주인장은 말했다. 헐레벌떡 준비하고 바로 떠났다. 재료가 소진된다는 의미는 맛이 보장된다는 뜻이다. 주인장과의 통화에서 빨리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식당에는 손님이 두 테이블밖에 없다. 우리가 들어온 후 손님은 줄을 서기 시작했고 10분만 늦었어도 우리도 그 줄 어딘가에 섞여 있었을 것이다. 우연히 찾은 식당이었는데 맛집이었다. 제일 먼저 딸내미의 최애 메뉴인 크림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그러나, 오늘은 하지 않는다는 주인장. 이런! 단지 그 메뉴 때문에 이곳으로 왔는데. 딸내미는 곧바로 토라졌다. 어쩌겠는가. 식당에서 팔지 않는다는데. 어쩔 수 없이 함박스테이크와 카레, 돈가스를 주문했다. 함박스테이크는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바로바로 만들어서 나오는 것보다 왠지 신뢰가 더 느껴졌다. 기다리는 시간은 주인장의 정성이 담긴 뜻이라 생각했다. 음식이 나오고 내가 먼저 시식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은 훌륭했다. 정말 맛있다고 딸내미에게 먹어보라고 했지만, 딸은 뾰로통. 자기 좋아하는 메뉴가 없어서 안 먹겠다고 강짜를 부렸다. 그래도 억지로 설득해 한 입 베어 물게 했다. 그다음부터는 입안이 터지도록 함박스테이크를 욱여넣는 딸내미. 역시 이곳은 맛집이었다. 편식쟁이도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식당.
봄날의 말썽쟁이 꽃가루. 우리 집의 편식쟁이 딸내미. 어딘가 닮은 듯한 꽃가루와 딸내미. 맛있는 함박스테이크로 꽃가루 알레르기를 한 방에 날려버린 멋진 식당. 어린이날 특별행사는 없었어도 행복한 날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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