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에 필요한 것들.
음....
신발. 정확히 말해서 운동화.
그리고......
요즘 같으면 마스크. 미세먼지 때문에
또, 그리고 뭐가 있을까?
맞다. 제일 중요한 것.
두 다리?
아니, 의지.
오늘 걸은 총거리는 17.7km.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다. 처음엔 3km 거리도 힘들었는데 어느덧 10km가 넘더니 17km가 찍혔다. 사람 몸이 참 신기하다. 회사 출근을 걸어서 하기 전, 7km 정도 걷다가 다음 날 10km로 거리를 늘려봤다. 그랬더니 제일 먼저 허리에서 신호가 왔다. 고작 3km 더 걸었을 뿐인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그동안 7km 정도 꾸준하게 걸었기에 아무 무리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몸은 아니었나 보다. 내 몸의 한계는 7km인가. 3이라는 숫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결과는 내 몸에서는 30 이상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충분히 걸을 수 있다고 머리는 생각하지만, 허리는 그렇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회사 출근에 양재천을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거리는 증가했다. 당연히 허리는 고통을 호소해왔다. 그만 걷고 버스를 타라고 몇 번이고 신호를 보냈다. 그 고통을 참고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의지였다. 걸어서 회사까지 가겠다는 의지 말이다. 그 의지는 허리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약이 아니었을지. 그렇게 쑤셨던 허리가 차츰차츰 줄어들었다. 10km를 넘어서도 심하게 끊어지는 아픔은 느끼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허리가 적응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은 것도 아니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지도 않았다. 허리가 쑤시는 현상은 저절로 사라졌다. 7km를 넘어 3km를 추가했을 때 받았던 고통은 결과적으로는 더 걷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더 꾸준하게 걷지 않았다는 것. 사람의 몸은 그렇다. 지속성을 유지하면 자신의 한계는 점점 늘어난다는 사실. 그 고통을 참지 못해 포기하면 한계는 거기서 끝이 나고 만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가둬버리는 결과를 만든다. 내가 회사까지 걸어가기 전, 나의 한계는 7km에 머물러 있었다. 한두 번 10km를 걸은 적이 있지만 그렇게 걸은 후 여파는 대단했다. 괜한 오기를 부려 원치 않는 고통만 얻었으므로. 걷기도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자기가 어디까지 걸을 수 있는지 제일 먼저 간파해야 한다. 무턱대고 걸었다가는 몸은 망가지고 만다. 적당한 목표를 세우고 천천히 늘려가야 한다. 어느덧 내 몸은 15km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길러졌다. 이제 나에게 10km 걷기는 허리의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다. 의사도 고쳐주지 않은 고통을 땅바닥이 제거해줬다. 나의 두 다리가. 내가 걷겠다는 의지가 말이다.
양재천 영동 3교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내자 제일 좋아하는 오른쪽 산책로 코스. 내 옆으로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갔다. 자전거 애호가들이 사용하는 사이클. 몸에 착 달라붙는 자전거 슈트에 머리 보호 모자를 쓴 사이클 족이었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자전거 왼쪽으로 기다란 작대기가 꽂혀 있는 게 아닌가. 내 시선은 자전거 주인에게 쏠렸다. 머리부터 시작해 팔, 상체, 엉덩이, 하체로 내려갔다. 아니 그런데, 페달 부분이 이상했다. 자전거 페달에 다리가 하나만 보였다. 오른쪽 페달에만 운동화가 놓여 있었다. 빠른 속도로 앞으로 치고 나갔지만 내 두 눈은 놓치지 않았다. 그 자전거의 주인은 오른쪽 다리 하나로만 페달을 밟고 있었다. 나를 더욱더 놀라게 했던 것은 자전거의 속도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뒤에서 계속 그 자전거를 바라보았다. 그의 왼쪽 다리는 엉덩이 부분에서부터 보이지 않았다. 왼쪽 다리 하나가 완전히 없었다. 신기하게도 자전거는 자빠지지 않았다. 제대로 중심을 잡으며 앞으로 돌진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거지? 그제야 나는 그 목발의 역할을 알았다. 큼지막한 목발 두 개는 자전거의 왼쪽에서 중심을 잡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왼쪽 다리가 없는 라이더의 중심은 그 목발이 담당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한번 상상해보자. 다리 한쪽이 없는 상태에서 페달을 돌릴 수가 있을까? 아마도 돌릴 수는 있을 것이다. 바퀴는 돌아가기야 할 것이다. 문제는 페달을 위아래로 누르며 바퀴를 돌리는 것이 아닌 제대로 앞으로 나가야 한다. 자전거는 바퀴가 회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쪽으로 기울기라도 하면 바로 꽈당 이다. 다리 하나로 자전거를 전진시키는 행위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라이더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단순히 페달을 밟아 자전거 바퀴를 회전시키는 것에서 한 층 발전해 두 다리를 사용하는 사람들만큼 속도를 내고 있었다. 당당히 앞으로 진격하면서. 거침없이.
10km 걷는데 허리가 쑤셔 포기하려 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멀쩡한 두 다리가 있는데도 몸은 여전히 아프다고 말했다. 단련되지 않은 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3km 더 걷는 데 느꼈던 고통은 다리 하나 없는 라이더의 고통과는 비교할 거리도 아니다. 그 라이더와 나의 차이는 육체적인 다름이 아니었다. 그와 나의 가장 큰 차이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자전거를 타겠다는 의지. 자전거 애호가들만큼 빠른 속도로 페달을 돌리겠다는 의지. 그 의지와 다짐에는 육체의 장애는 걸림돌이 아니라는 것. 자전거 중심을 잡기 위해 무거운 목발을 달아서라도 타겠다는 굳센 의지. 마음의 다짐이 해결책이었다. 나도 가끔은 걷기 싫을 때가 있다. 아니 자주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럴 때, 그 라이더의 뒷모습을 내 머릿속에서 꺼내 본다. 단단하고 튼튼하지 않은 두 다리지만 그래도 제자리에 붙어있어 줘서 고맙다. 두 다리 덕분에 17.7km라는 숫자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느리고 더디지만 조금씩 단단해져 가는 두 다리. 거기에 굳센 의지까지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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